1. 한국영화만 전달할 수 있는 고유의 정서
<기생충>을 관람하며 느낄 수 있는 '불쾌함'이라는 감정은 영화가 주는 시청각적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견 '졸부'와 '극빈층'의 대결구도로 보이는 이 이야기가 결과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이야기고, 기택의 가족이 결국 관객의 대다수인 우리를 그렸다는 사실이 아주 뼛속 깊이 와닿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정도야 국적에 상관없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이지만 한국인이 아니라면 보는순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디테일들이 이 영화에는 오밀조밀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가령 소독가스를 뿌리고 그것을 그대로 들이키는 장면이나, 짜빠구리에 한우를 넣는게 얼마나 기가 차는 조합인지 다른나라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정서들을 이 영화에 흥미롭게 녹여냈습니다.
2. 해외에서도 감탄하는 기생충의 연출력
영화 <기생충>에 대해 세계적으로 이토록 대단한 반응이 나오는 데에는 연출, 촬영, 편집의 힘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한국어 대사는 백프로 전달되기 힘들겠지만 시작적인 것은 만국 공통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카데미에서 미술상, 편집상에도 노미네미트 되었습니다. 양진모 편집감독은 미국 영화편집자 협회상을 받았는데, 해외팬들은 편집감독의 이름까지 알고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기생충의 착 달라붙는 리듬감에 열광했습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가난한자와 부유한 자를 상승과 하강 계단의 이미지로 그려낸 것은 누구나 알겠지만, 더불어 빛의 양으로도 나타냈습니다. 반지하에는 자주 들어오지 않는 빛, 박사장네 집에는 쏟아지는 빛 같은 요소를 영화 곳곳에 배치하였습니다. 또한 '선을 넘지마' 라는 대사 뒤로 장면 곳곳에 선을 넘는것에 대한 연출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미쟝센이란 눈에 보여지는 모든것을 의미합니다. 소품, 세트, 그리고 카메라의 각도까지 미쟝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계산되어 만든 두 집의 세트와 다양한 요소들 또한 영화의 숨겨진 볼거리중 하나입니다.
특히 봉준호 감독은 장면과 장면을 끊기보다는 롱테이크를 선호하고 클로즈업 보다는 뒷배경까지 모두 담는것을 선호하는데 이러한 연출은 '앙상블 연출' 이라고 불리며 봉준호 감독의 또다른 작품이었던 <살인의 추억>에서 극찬을 받은 바 있습니다. <기생충>에서도 대부분의 장면이 롱테이크인데, 카메라가 앞뒤 좌우로 계속 부드럽게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는 롱테이크 라는 것을 잘 의식하지 못합니다. 봉준호 감독은 롱테이크를 사용해 화면이 정지되어 있지 않은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이 장면들을 구성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와이드, 미디엄, 그리고 클로즈업 샷을 한 테이크 안에 포함시킵니다. 봉준호의 완벽한 샷 계획과 스토리보드는 장면을 발전시키기 위해 카메라의 이동과 블락킹을 조화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영화의 앞 절반은 김씨 가족이 그들의 사기행각으로 점점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카메라가 지속적으로 천천히 앞으로 이동합니다. 이렇게 기어가듯 앞으로 가는 움직임은 각각의 순간에 무언가를 향해서 나아간다는 징조를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생충>은 지극히 한국적인 영화인데 과연 반이라도 이해를 했을까 우려를 하지만, 해외에서는 더욱 영화를 깊이 파고들며 좋아하는 부분이 바로 이 놀라운 시각적 디테일 들이었습니다.
봉준호 감독도 "기생충이 빈부격차에 대한 이야기기 때문에 보편성을 가진다고 하지만,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 영화가 아주 영화적인 방식으로 영화 그 자체로 어필했다고 본다." 라고 인터뷰 했습니다.
3. 기생충의 진짜 의미(스포포함)
영화의 초반, 기택은 집에 곱등이가 많아졌다며 곱등이를 손가락으로 튕깁니다. 곱등이는 기생충인 연가시의 대표적인 숙주입니다. 그리고는 많아진 곱등이를 박멸하겠다며 소독약을 그대로 집안으로 들이게 되는데, 곱등이가 박멸 되었는지는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습니다. 카메라는 콜록거리는 기택의 가족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의연한 태도를 보이는 기택을 보여줄 뿐입니다.
스토리는 진행되어 숙주인 박사장네 집으로 기택일가 전부가 기생하는 데 성공하게 되지만, 집사였던 문광이 돌아오면서 박사장네 기생하고 있던 두 집안 사이에는 다툼이 일어납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다송의 생일날, 지하실에서 올라온 근세의 분노는 자연스럽게도 기생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이던 같은 계급인 기택의 가족에게로 향하게 되고 오늘날의 현실이라도 반영하듯 근세의 칼에는 여성인 기정이 희생되고 맙니다.
그리고 근세는 존경하는 박사장에게 리스펙을 외치지만 박사장은 그의 냄새에 코를 막으면서 근세의 몸에 깔린 자신의 차키를 가져갈 뿐입니다. 그런 박사장이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근세에게 보인 모욕적인 태도에서 기택은 근세에게는 동질감을, 박사장에게는 혐오와 분노를 느끼고 박사장을 칼로 찌르게 됩니다.
기택은 영화속에서 두번이나 '그래도 사모님을 사랑하시죠?' 라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유대감과 동질감을 찾고자 했지만, 박사장은 정색하면서 업무의 연장이라 생각하라고 기택과 자신의 상하 관계에 있어서 정확히 선을 그어 구분짓습니다. 박사장은 바로 어젯밤에 아내인 연교를 사랑해서 소파에서 한껏 사랑을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영화의 결말에서 결국 기택은 근세가 살던 지하실로, 기우는 반지하로 돌아옵니다. 기택은 모든것을 포기한 채 그 지하에서 살겠다고 하고, 기우는 자신이 돈을 벌어 그 집을 사겠다고 말을 합니다.
기생충의 진짜 의미는, 박사장에게 기생하려 했던 두 가족들의 모습이 아니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에 순응해버린 기택과 기우의 모습일 것입니다. 거듭된 실패로 무계획이 계획이 되어버린 기택은 패배감에 젖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모든 것을 포기해버렸고, 요행과 거짓으로 계획을 세워 자본가에게서 안락한 기생을 꿈꿨던 기우는 여전히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많은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숙주인 곱등이 한마리를 없애는 것처럼 박사장을 없앤다고 해도, 약을 쳐서 벌레를 몰아낸다고 해도 기침소리 한번 내지 않는 기택의 모습처럼 이 사회에서 기생하는 사람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거대하고 굳건한 자본주의 시스템이 있는 한, 그리고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지금과 같이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오히려 시스템에 의해 기생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 더욱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영화는 이 사회의 지하의 반쯤, 혹은 완전히 파묻혀 보이지 않는 그들의 모스부호를 해석해주며 끝이 납니다. "편리하고 실용적이지만 양극화와 개인주의를 만들어낸 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 살고 있는 당신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서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를 고민하지 않고, 이 문제를 공생이 아닌 기생으로 취급해 버린 채 박사장의 일가처럼 간편하고 안일한 생각으로 보고싶은 것만 보고 살게 된다면 기택네 화장실의 오물이 끓어 넘치듯, 뉴스에서 보던 분노에 휩싸인 한 낮의 칼부림을 자신의 일로 겪고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모를 것입니다.
단순히 미치광이의 광기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제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함께 고민해봐야만 한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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