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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웅' 포스터

 

 

1. 뮤지컬 영화 '영웅', 아쉬웠던 믹싱

영화 <영웅>은 안중근 의사가 단지동맹을 맺은 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사형 집행에 처하는 그분의 일생 마지막 1년에 픽션을 섞고 뮤지컬 장르와 결합한 영화로, 노래와 평대사가 배합 된 뮤지컬 영화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뮤지컬 영화입니다.
 그런데 우선 음향 처리가 조금 아쉬웠습니다. 평대사 음향에 크게 거슬리는 부분은 없었지만 노래, 그러니까 '넘버'에서 보컬이 음악에 묻히는 듯한 양상이 반복적으로 나왔습니다. 인터뷰를 찾아보니 노래를 후시녹음으로 하지 않고 라이브 녹음으로 했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편집실에서 보컬과 음악을 믹싱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또한 첫 단지동맹 장면에서 정성화 배우의 정면으로 카메라가 들어가는데 여기서 입모양이 맞지 않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라이브 녹음을 했다고 하니 이 역시 믹싱 과정의 문제인가 싶습니다.
 음악은 서사보다 인과적인 특징이 덜한 대신 순간적인 감정을 확 끌어올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뮤지컬 장르는 감정을 응축시키고 노래가 그 핵심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가사가 음악에 묻히는 것은, 뮤지컬 장르에서 조금 큰 문제라고 보입니다. 특히나 본작의 넘버가 대부분 배우 연기에 의존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아쉬움이 조금 더 크게 다가옵니다.


2. '영웅' 영화의 클로즈업 연출과 무대

 넘버 장면에서 클로즈업 구도가 꽤 많습니다. 감독님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 뮤지컬 무대에서는 멀어서 잘 보이지 않던 배우의 얼굴을, 영화의 특징을 살려 일종의 쇼잉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사소한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입모양이 안맞는 문제가 클로즈업 구도에서 더 잘 보인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자연스레 배경의 활용이 낮아진다는 점입니다. 뮤지컬에서 무대 미술의 표현주의처럼 뮤지컬 영화에서는 배경을 통해 풍부한 감상을 전달하기도 하는데, 본작은 잦은 클로즈업 구도 때문에 자연스레 미장센 활용이 낮아지고 그래서 배우들의 좋은 연기에도 불구하고 시퀀스마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배경이 아예 안쓰인 것은 아니지만, 배경이 쓰인 장면에서 CG가 조금 어색한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벌판, 기차 장면은 상당히 CG가 어색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감정을 해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영화에 큰 자충수가 있는데 쓸데없는 개그 장면들이 이미 전반적인 감정선을 다 해쳤기 때문입니다.


3. '영웅'과 관련없는 개그욕심에 대한 아쉬움(스포포함)

 위와 관련해서 세번째 포인트인 개그 욕심을 얘기해보겠습니다. 우선 영화속 인물 구성을 봤을 때 안중근은 조국에 대한 막중한 임무와 그로인한 고뇌를 지닌 캐릭터이고, 이토 히로부미는 넘버에서 나오듯 제국주의적 야망에 휩싸인 놈, 그리고 독립투사 우덕순/조도선/유동하가 나오는데 각자의 인물을 살리기 보다는 독립투사 일행으로 그들은 함께 그룹 지어지는 행적으로 그려집니다.

 영화 초중반 하얼빈에서 그들이 투닥거리는 모습이 주로 묘사되는 장면을 통해서 이 영화 전체의 감정선의 디자인을 정리해보면 독립투쟁 최전방에 선 주인공 안중근 역시 가족이 있고 속으로는 당연히 평화로운 일상을 바랄 것이라는, 그러니까 '영웅'의 인간적인 면모를 이 조연 일행을 통해서 보여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가상의 인물인 마두식, 마진주도 그런 역할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 의도가 조금 꼬였는지 일행 캐릭터들을 통해서 영화가 자꾸 개그 욕심을 과하게 부린다는 겁니다. 영화 전반적으로 엄숙한 분위기가 지배적인데 그에 어울리지도 않고 완급조절 기능도 하지 않는 그런 단편적인 개그들이 이 작품성을 대폭 깎아먹습니다. 보면서는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하나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개그 때문에 전체적인 감정선이 무너졌습니다.
 영화 초반 안중근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만국공법에 의거하여 동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포로를 살려주는데, 그 포로가 주둔지를 발설해 안중근이 거의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이게 후반부 누가 죄인인가 넘버와 연결되며 중요한 장면으로 캐치를 할 수 있지만, 그 감정선을 오래 이끌지 않고 장면 앞뒤로 일행들끼리 외모 개그같은 것을 구사하는 장면을 배치해서 흐름이 뚝뚝 끊기게 만듭니다. 또한 마두식이 잡혀서 고문을 당하다 죽고 장례식까지 하는데 이어서 일행들이 사격 연습을 하다가 총구를 잘못 겨누는 개그 장면이 구사된 구간에 감정선이 크게 끊겼습니다. 초반부 아무곳에 배치해도 상관없을 그 장면이, 왜 동료의 죽음 직후에 배치가 됐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마두식의 죽음에선 넘버가 있었고 일행 모두 마두식 장례식에 참석해 슬퍼하기까지 했는데 말입니다. 총구 장면에서는 이 영화가 아예 완급조절을 잘못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법정장면 이전까지 시종일관 JK식 개그가 나오며 완급조절이 되지도 않고 개그를 구사하느라 조연들에게 따로 서사를 부여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은 캐릭터들의 죽음에서 넘버가 클로즈업 위주로 구성되어 이입이 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마진주의 죽음은 없어도 무방했을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목처럼 안중근 의사의 영웅적인 면모에 집중해서 개그를 덜어내고 다른 조연들은 앙상블 위주로 구성을 했다면 조금 더 취지에 맞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거리에서의 앙상블 넘버의 좋은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던 입장에서 더 아쉬웠습니다. 이와 관련해 설희도 조금 애매한 캐릭터 였는데, 역사적으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열다섯 가지 죄목 중 하나로 민비의 시해를 들었기 때문에 영화에 민비가 나오는 것은 충분히 개연적이지만 시해 당시 후궁이었던 설희가 일본에 건너가 스파이를 한다는 설정에 비약이 느껴졌습니다. 설희의 분량은 많았으나 이렇다할 서사도 없어서, 안중근에게 집중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4. 영화 '영웅' 후기

 캐릭터들이 퇴장하고 비로소 안중근에게 조명된 법정 장면부터는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조마리아 여사와 주고받는 넘버에서는 모자의 애틋한 감정과 조국에 대한 헌신, 그리고 고뇌가 겹쳐져 더 애절하게 그려졌습니다.
 무리한 개그욕심으로 감정선을 깨뜨리지 않고,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더욱 더 좋은 작품이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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