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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의 남자' 포스터

 

 

 

1. 영화 <왕의 남자> 간단한 정보

 연산이 왕이었던 시절, 여자보다 더 여자 같던 광대 '공길'과 당시 최고의 광대 '장생'의 일생을 다룬 이야기를 다룬 대한민국의 역대 천만 영화 <왕의 남자> 입니다. 영화 <왕의 남자>는 아마 한국인이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작품일 것입니다. 연산군의 이야기를 다룬 김태웅의 희극 <이(爾)>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입니다. 천만이 넘는 관객이 본 만큼 다양한 수식어가 붙었는데, '무명배우였던 '이준기'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작품' , '가장 한국적이었던 영화' , '몇 안되는 한국의 마스터피스'등이 있습니다. 

 감독 '이준익'을 한국인의 뇌리에 콱 박히게 했던 작품이며,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와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세번째로 천만관객을 기록한 영화입니다. <왕의 남자>를 볼때마다 공감되는 인물이 다르다는 것은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장생과 공길의 동성애를 다룬 영화? (줄거리/스포포함)

 사실 영화 <왕의 남자>는 논란이 많은 영화입니다. 장생과 공길의 이야기, 즉 동성애가 주제인가 혹은 비운의 군주, 연산의 비극이 주제인가를 두고 많은 관객들의 뜨거운 논쟁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처음 볼 때는 연산이라는 인물의 비극이 와닿지만, 반복해서 볼수록 장생과 공길의 절절한 이야기에 매료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장생은 영화 내내 공길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영화 초반, 공길이 희롱을 당하려하자 천민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해 하늘같은 양반에게 도전을 합니다. 실제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후 자신의 생계였던 남사당패를 떠나 공길과의 미래를 위해 한양이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주저없이 떠나는 모습에서 장생의 능동적이고 솔직한 면모를 포착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공길은 굉장히 수동적인 인물입니다. 여자보다 더 여자같은 외모 때문에 권력자들에게 몸을 팔아야하는 현실에 대해 저항하지 않습니다. 공길의 수동성은 장생을 대할 때도 적용되는데, 장생을 형이나 동료 그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쉽게 표현하지 않는 내향성을 보입니다.

 이러한 두사람의 차이는 장생과 공길이 궁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들어가며 문제가 됩니다. 양반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왕 '연산' 또한 공길을 몰래 부르게 되었고 장생은 왕을 질투하기 시작합니다. 천한 광대의 신분이었던 장생의 질투는 결국 왕이 아닌 공길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고 둘은 전례없는 갈등을 겪습니다. 아마 궁이라는 공간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리고 연산이라는 높은 벽을 만나지 않았다면 둘의 이러한 갈등은 쉽게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살인을 저지른 공길의 불안감을 풀어주기 위해 장생이 장님놀이를 했던것 처럼 쉽게 말입니다.

 뒤이어 궁에서 동료 육갑이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장생과 공길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게 됩니다. 그토록 마음을 표현했지만 자신이 아닌, 왕의 아픔에 공감하고 궁에 남고자 하는 공길에 대한 배신감으로 장생은 궁을 떠나려 합니다. 갈등하는 두사람 앞에, 공길을 질투해 녹수가 판 함정에 빠지게 되는 위기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장생은 모든 죄를 혼자 뒤집어 씁니다.

 이 일로 옥에 갇혔던 장생은 처선에 의해 옥에서 나올 수 있었지만 공길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왕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왕 앞에서 줄타기를 하며 왕과 공길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폭로하게 됩니다. 그 일로 장생은 결국 눈을 잃게 됩니다. 이 때 장생이 본인은 더이상 잃을것이 없다는 대사를 하는데, 여기서 이미 잃은것은 아마 공길에 대한 사랑일 것입니다. 남사당패를 탈출한 이유, 그토록 광대로서 성공하고 싶었던 이유 모두 공길이었지만 공길의 시선은 왕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인물이고 왕 앞에서 용감할 수 있었습니다.

 용기의 대가로 장생은 눈을 잃었고, 공길은 감옥에서 장생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제서야 공길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집니다. 영화의 결말부, 자신의 처지에 대해 한탄하는 장생에게 공길이 간접적으로 사랑을 고백합니다. "어느 잡놈이 그놈 마음 훔쳐가는걸 못보고" 라는 장생의 대사에서 잡놈은 연산이고 그놈은 공길일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장생을 향한 공길의 대사인 "야 이 잡놈아!" 라는 대사로, 공길의 마음을 훔쳐간 잡놈은 다름아닌 장생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공길은 장생이 타는 줄 위로 올라가 줄을 튕김으로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합니다. 

 이후 두사람은 함께 한 줄을 타게 됩니다. 줄타기는 원래 한 줄에 한 사람이 타는 것인데 둘이 탄다는 것은 자살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광대가 되고 싶다던 그들의 대사와 광대에게는 생명인 부채를 던지는 장생의 행동을 통해 우리는 두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의 엔딩에서 주인공들의 대사인 "나 여기있고 너는 여기없지" 를 통해 저승과 이승을 나누는데 이를 통해 공길과 장생의 죽음을 확정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영화 <왕의 남자>는 감정에 솔직한 인물과 그렇지 못했던 두 인물 사이의 절절한 줄다리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여타 인물과 달리 공길의 감정과 행동동기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공길이라는 인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했던 원작과 비교하면 아쉬운 점으로 뽑을 수 있습니다.

 

 

3. 어리고 여렸던 군주 '연산'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 말고도 관객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또 있습니다. 바로 조선의 10대 왕이었던 연산이라는 캐릭터 입니다. 원작인 극 <이(爾)>도 그렇고 이준익 감독의 영화 <왕의 남자>도 그렇고 결국 두 작품의 핵심이 되는 인물은 연산입니다. 보통 연산군하면 각종 폭정과 향락에 빠져 종내에는 중종반정으로 몰려난 폭군으로 기억을 할텐데, 영화 <왕의 남자>는 이러한 보편적 인식을 뛰어넘어 연산의 인간적인 측면에 주목한 영화입니다.

 연산은 조선의 법제를 완성한 성종의 아들입니다. 조선 건국 초기 성리학적 질서를 바탕으로 국가의 기강을 바로 잡아야했고, 이에 성종의 아들인 연산에게는 각종 제도와 규율에 맞는 모범적인 삶이 강요되었습니다. 즉, 궁에서 그의 일평생은 늘 아버지인 성종과 비교 대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연산군 나이 7세에 사약을 받고 죽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강요받은 각종 제도와 규율, 친어머니 없이 커야했던 현실, 이는 연산이라는 한사람에게는 분명 큰 슬픔이었을 것입니다.

 극 중 연산이 조선의 왕들이 일반적으로 입는 빨간 곤룡포가 아닌 시퍼런 곤룡포를 입는 설정은 차가운 이미지로 하여금 그의 우울함과 슬픔을 대변한 연출일 것입니다.이어 영화 내내 마음속 상처로 인한 결핍을 채우려는 연산의 다양한 행동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연상의 여인 녹수와 문란한 성생활을 하는것과, 성리학적 가치를 바탕으로 왕으로서의 삶을 강요받는 자신과는 달리 무대 위에서 왕도 되고 여자도 되는 자유로운 광대들을 부러워하며 그들과 함께 무대를 즐기는 장면입니다. 

 이후 공길에게 마음을 주고 그를 소유하려 했지만 공길이 자살시도를 하며 자신에게 등을 돌리자 마치 어린아이가 망가진 장난감을 버리고 새로운 장난감을 찾듯 다시 녹수에게 걸어가는 모습은 그의 심리적 공허함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일생을 억압적이고 불안하게 살아야했던 그에게는 항상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폭정, 향락, 사치 등 비정상적인 방식이 그것이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받은적이 없기에 원초적인 쾌락만을 추구할 수 밖에 없었던 어리고 여렸던 왕, 연산의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주변에 진정으로 연산을 챙겨줬던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달랐을 것입니다. 빡빡한 신하들, 권위를 위해 자신을 이용하는 녹수,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도 모른척 했던 궁실 가족들,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 처선, 그리고 결국 자신을 버린 공길까지, 동성애와 더불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주목해야할 부분이 바로 연산이라는 군주의 쓸쓸함 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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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포스터

 

 

1.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줄거리

 주인공 세연은 평범하다면 평범한 '엄마'입니다. 남편인 '진봉'을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 결혼한 후에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헌신해온 사람, 한 사람의 여자이기보다는 '엄마'로 기억되는 사람, 손에는 물이 마를날이 없고 남편 챙기랴 아이들을 챙기랴 정신없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녀의 행복은 길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질병이 찾아온 것입니다. '폐암 말기' , 그녀의 삶이 끝나기 까지 남은 시간은 2개월이 고작이었고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시간은 멈췄지만 자신의 암 소식을 알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봉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이들을 먼저 걱정하면서 세연에게 동정조차 사치라는 식의 태도를 취합니다. 이에 참다참다 폭발한 세연은 '첫사랑을 만나고 싶다'는 폭탄발언을 합니다. 만약 들어주지 않는다면 이혼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말입니다. 이렇게 영화의 초반부 흐름은 충격과 비애가 흐릅니다.

 엄마를 쳐다도 보지 않는 아들, 그리고 방에서 문을 걸어잠그고 사는 딸, 지지리 말도 안듣는 '진봉'. 그나마 남편이 운전을 해주는 덕에 세연은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를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첫사랑의 소식을 듣고 이야기는 과거 회상으로 향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방송반 동아리 활동으로 만난 첫사랑 정우의 이야기 입니다. 세연은 정우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두사람은 이문세의 '별밤'을 보러 서울까지 가면서 가까워 집니다.

 이후 세연의 모험은 정우를 찾는 여정으로 연출됩니다. 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의 개인정보를 알려주지 않았고 진봉은 어쩐지 그 사실에 신이 났습니다. 하지만 부산으로, 다시 섬으로 향한 세연은 진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그리고 편지를 준것도 자신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정우를 오해하고, 오히려 친구인 현정이 이간질을 했다고 생각한 세연은 사실 정우가 좋아했던 것은 세연이 아니라 현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다니며 세연과 진봉이 함께 지내던 시절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목포든 어디든 진봉과 세연이 같이 다니는데, 어디를 가더라도 두사람이 함께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부산에서는 둘이 신혼여행을 갔던 추억이 있고, 세연이 대학시절을 떠올리게 되면서 처음으로 만난 진봉의 스토리는 절절합니다. 세연이 고등학교때 오해했던 첫사랑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절실하게 세연을 원했던 사람은 진봉이었습니다. 세연도 진봉에게 사랑을 느꼈고 영화는 두사람의 사랑을 무한 긍정하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2. 뮤지컬의 힘이 더해져 감동적인 영화

 영화의 초반에서 엄정화 배우가 노래를 시작하는 장면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좋아할 수 있는 사람과, 이 영화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갈리는 장면입니다. 염정화의 노래에 공감해서 울컥 감정이 나오는 부류의 사람이 있고, 감정이 잘 동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전자의 관객들에게 <인생은 아름다워>는 영화 끝까지 같은 종류의 감동과 웃음을 선물합니다. 하지만 후자의 사람들에게는 식상하고 평범한 이야기가 한편 있을 뿐입니다.

 뮤지컬의 힘은 대단합니다. 음악과 춤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 과정을, 영화는 뮤지컬의 판타지와 현실의 교차로 설명합니다.예를 들어 세연과 진봉이, 세연이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이자 첫사랑과 처음 만났던 목포로 방향을 잡고 출발하는 순간 세연의 들뜬 마음이 노래와 춤으로 표현됩니다. 첫 휴게소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이 장면에서는 세연의 감정과 기분 뿐만아니라 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 휴게소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뮤지컬 답게 함축해서 보여줍니다. 현실의 지루한 부분을 잘라내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면, 뮤지컬은 그 현실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핵심만 쏙쏙 뽑아 과장해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 환상과 이야기의 결합이 펼쳐지는 것이 초반 뮤지컬 장면의 힘입니다.

 

 

3.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쥬크박스 뮤지컬영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원래 2020년 연말에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때문에 개봉이 밀리게 되면서 2년만에 상영하게 된 영화입니다.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적 특징도 가지고 있지만 과거의 향수를 불러온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작품입니다. 서울극장과 이문세의 별밤을 듣고 자랐던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에 큰 공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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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lsquo;포레스트 검프&rsquo; 포스터

 

 

1. 영화 <포레스트 검프> 간단 정보

  선천적으로 불편한 다리와 남들보다 조금 떨어지는 지능을 가지고 있는 소년 ‘포레스트 검프’는 어머니의 헌신적이고 강인한 보살핌과 사랑으로, 사회의 편견과 괴롭힘 속에서도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고 성장합니다. 어느덧 성장한 포레스트 검프는 친구들의 괴롭힘을 피해 도망치다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어느날 우연히 들어간 대학교 미식축구장에서 그의 재능을 보게 된 대학측은 그를 미식축구 선수로 발탁되고, 졸업 후에도 뛰어난 신체능력으로 군에 들어가 성과를 거두며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행복할것만 같던 시간도 잠시, 어머니가 병에 걸려 돌아가고 첫사랑이었던 제니 역시 그의 곁을 떠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행복의 의미를 찾는 포레스트가 우리에게 전하는 인생의 이야기, 영화 <포레스트 검프>입니다.
 많은 이들의 인생영화로 꼽히는 전설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놀랍게도 제작 당시에는 작품을 반기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IQ 낮은 남자의 이야기가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연배우 ‘톰 행크스’는 자신의 출연료를 부족한 제작 예산에 투입하기로 결정 하였고 결국 작품은 톰 행크스의 불멸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작품은 개봉된 후 높은 사랑과 인기를 받으며 수많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2.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

 <포레스트 검프>는 ’웬디 파이너먼‘의 소설을 원작으로 두고 제작되었습니다. 웬디 파이너먼은 소설을 각색할 각본가를 신중하게 골랐고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각본가는 ’에릭 로스‘ 였습니다. 에릭 로스의 각본이 완성된 후, 각본은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에게 전해졌습니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DVD코멘터리를 통해 처음 각본을 봤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며 당시 순간을 상세히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그전부터 여러 각본을 보았지만 에릭로스의 각본은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마음 졸이며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사실 IQ 낮은 남자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나 충동 같은건 없었습니다. 이 기이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끝에 어떻게 될까, 다음은 어떻게 될까 계속 궁금했습니다. 각본을 받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건 아주 초창기였긴 했지만 좋은 징조였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감독은 <포레스트 검프>를 연기할 배우로 다른 배우는 생각할 수도 없이 ‘톰 행크스’를 바로 떠올렸다고 합니다. 다행히 톰 행크스는 각본이 마음에 쏙 들었고 그래서인지 놀랍게도 읽은지 약 한시간 반만에 계약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다만, 단 한가지의 조건을 걸었다고 하는데 바로 영화가 역사적으로 정확할 경우에만 역할을 맡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제작사인 ’파라마운트 픽쳐스‘는 톰 행크스에게 전체 제작 예산 5000만 달러 중 700만 달러의 출연료를 제안했습니다. 톰 행크스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안타깝게도 수많은 관계자들은 IQ 낮은 남자의 이야기가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예산을 줄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산을 줄이면 원했던 퀄리티의 영화를 만들기는 어려울 터, 톰 행크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을 제작사에 건냈습니다. 바로 자신의 출연료를 제작 예산에 투입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신 출연료는 작품 흥행에 따라 성과급으로 받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제작사로서는 마다할 필요가 없는 제안이었고, 그렇게 톰 행크스는 거의 무급으로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제작사의 예상과 달리 다행히 작품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고 톰 행크스는 작품을 통해 당시 출연료로 제안됐던 가격의 거의 10배에 달하는 6500만 달러(약 870억원)를 벌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톰 행크스는 <포레스트 검프> 연기로 제 6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고,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과의 인연을 이어가 이후 또 다른 명작으로 불리는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도 출연했습니다.
 제작자 ’스티브 스타키‘는 제니 캐릭터에 대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감정적으로 망가진, 상처가 깊은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상처받은 내면이 드러나는 인물이 제니를 연기해주길 바랬습니다.그는 ’로빈 라이트‘를 발견했고 로빈에게서 제니와 같은 상처받은 내면을 보았다고 합니다. 제자진들은 곧바로 로빈에게 대본 리딩을 요구했고 감독과 함께 스크린테스트를 거쳤습니다. 이후 다함께 제니 캐스팅 회의를 가졌는데, 그때 감독이 아주 심플하게 ’로빈을 뽑아야 해‘ 라고 말했고 제니 역 캐스팅은 그렇게 쉽게 결정됐습니다.
 제작자들에 의하면, 포레스트의 소년 시절을 연기한 배우는 아주 우연히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작진들은 먼저 테네시 멤피스 지역에 아역 배우 공개 오디션 공고를 냈습니다. 그리고 오디션 현장에서 엄마와 함께 찾아온 한 아이를 발견했고, 그 아이가 바로 ’마이크 험프리즈‘ 였습니다. 캐스팅 담당인 ’엘렌 루이스‘가 먼저 테이프로 아이를 녹화했고 제작자들은 녹화된 영상 속 아이를 보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들이 마이클 험프리즈를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어 한 이유는 다름아닌 ’어디서도 보지 못한 특이한 캐릭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카메라 앞에만 서면 얼어붙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카메라를 신경도 쓰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의 말투와 목소리에 가장 크게 끌렸다고 고백했는데, 작품 속 어린 포레스트의 말투는 꾸민 것이 아닌 실제 마이클 험프리즈의 말투입니다. 톰 행크스는 마이클 험프리즈의 발음에 큰 인상을 받았고 마이클 험프리즈의 목소리를 참고해 어른 포레스트 검프의 목소리를 만들었습니다.
 제니 아역을 연기한 ’한나 홀‘은 콜로라도 출신입니다. 마이클 험프리즈와 마찬가지로 <포레스트 검프>가 한나 홀이 맡은 첫 작품입니다. 제작자들은 로빈을 캐스팅할 때와 마찬가지로 제니 아역을 연기할 배우로도 망가진 듯한 내면이 느껴지는 인물을 찾았는데, 한나 홀을 봤을 때 로빈과 같은 아름답지만 독특하면서도 망가진 듯한 내면을 느꼈고 그렇게 그녀를 캐스팅 했다고 합니다.
 영화 <식스센스>,<A.I>로 유명한 배우 ‘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첫 영화출연작은 바로 <포레스트 검프>입니다. 제작자 스티브 스타키가 직접 캐스팅 했다고 합니다. 감독은 할리 조엘 오스먼트가 이후 대배우가 된 것에 대단히 큰 기쁨을 표현하며 속편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다만, 감독은 몇년 뒤 실제로 속편관련 이야기가 나왔을 때 속편 제작에 반대했습니다.
 포레스트 검프의 지혜로운 어머니를 연기해 줄 배우로 감독은 ‘샐리 필드’를 줄곧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젊다가 나이 드는 연기를 능숙하게 소화할 수 있는 배우, 무엇보다 성인 포레스트인 톰 행크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영화를 이끌 강력한 힘이 있는 배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놀랍게도 웬디 파이너먼도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감독이 샐리 필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감독에게 먼저 샐리를 어머니 역할로 추천했다고도 합니다. 감독은 그 제안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여 곧바로 샐리 필드에게 대본을 보냈습니다. 다만 감독은 ‘어쩌면 샐리가 수락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크게 걱정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샐리 필드가 맡을 역할이 10살 차이에 불과한 톰 행크스의 어머니 역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샐리 필드와 톰 행크스는 영화 <펀치라인>을 통해 연인 사이를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고, 대본을 읽어본 샐리 필드는 그 즉시 출연을 약속했습니다.
 포레스트 검프의 영혼의 친구인 버바와 댄 중위 배우는 동시에 캐스팅 됐습니다. 감독은 오디션 당시를 회상하며 ‘둘을 보자마자 역할을 맡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고백했습니다. 참고로 버바의 크고 두꺼운 아랫입술은 버바를 연기한 ‘마이클티 윌리암슨’의 아이디어 였습니다. 감독은 제품을 고르고 고른 끝에 영화없계에서 종조 이용되는 ‘플럼퍼’를 그의 입술에 넣어 캐릭터를 완성했습니다. 캐스팅이 순조로웠던 마이클티 윌리암슨과 달리 댄 중위 캐스팅은 제법 난이도가 높았다고 합니다. 댄 중위가 초반에는 냉철하고 혹독하다 후반으로 갈수록 연민과 호감이 느껴지는 대단히 입체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작자는 그러한 댄 중위 특유의 엄청난 변화를 겪는 인물을 묘사할 수 있는 배우를 찾다 ‘게리 시나이즈’를 발견했고 그에게서 댄 중위의 모든것을 담을 수 있는 면면을 발견했습니다. 참고로 그 당시 게리 시나이즈를 모르던 관객들은, 영화가 정말로 다리가 없는 사람을 캐스팅 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3. 중요한 소재였던 ‘깃털’의 의미

 작품의 초반, 깃털은 하늘을 날다 우연히 포레스트의 신발에 안착하고 작품의 마지막에 아들의 책에서 떨어진 깃털은 포레스트의 발에 떨어졌다 다시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감독에 의하면 깃털은 각본에서도 중요한 소재로 이용됐다고 합니다. 처음 각본에는 마지막 장면에 깃털이 없었다고 하는데, 감독의 의도로 각본을 수정해 넣었습니다. 감독은 깃털을 ’인생의 무작위성 혹은 운명‘을 나타내는 존재라고 표현했습니다. 깃털은 어디든 떨어질 수 있었으나 결국은 포레스트의 발 위로 떨어졌습니다. 감독은 ’깃털이 포레스트의 발 위로 떨어진 것도 운명‘ 이었다고 말하며 ’포레스트를 비유하는 존재’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감독에게 있어 포레스트는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캐릭터로 인지됐기에 깃털이야말로 포레스트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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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포스터



1. <캐치 미 이프 유 캔> 간단 정보

  당시 최고의 항공사 팬암의 부기장, 하버드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의사, 그리고 버클리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까지 전부 10대의 어린 나이에 사회적으로 권위가 있는 직업들을 사칭하면서 최연소 사기꾼으로 알려진 실존 인물 ‘프랭크 애버그네일 주니어‘. 그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입니다.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톰 행크스, 크리스토퍼 워컨, 에이미 애덤스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작품서과 흥행성을 전부 잡은 영화입니다.

2.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비하인드 스토리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5200만 달러의 제작비로 3억 5,200만 달러(한화로 대략 4,4040억원)를 벌어들이면서 제작비의 6배에 달하는 대박을 터뜨렸지만 2002년에 개봉한 영화들이 어벤저스 급이라 글로벌 흥행 순위는 11위를 기록했습니다. 평가는 로튼토마토 96퍼센트, 메타크리틱 75점, IMDB8.1로 연기력/연출/스토리 등 뭐하나 빠짐없이 전체적으로 호평이 많았습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 영화는 실존 인물 ‘프랭크 애버그네일 주니어’의 동명 회고록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물론 영화의 재미를 위해 각색되거나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프랭크에 따르면 대략 80퍼센트 정도가 사실이었다고 직접 인정했습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티비 프로그램 ‘투 텔 더 트루스’에 프랭크가 등장하며 영화가 시작되는데, 실제로 프랭크는 1977년 ‘투 텔 더 트루스’에 출연한 바가 있고, 출연자들의 대사까지 그대로 가져와 연출되었습니다. 영화상에서 결과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당시에 실제로 프랭크가 누구인지를 맞춘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극 중에서 프랭크는 가출한 뒤로 아빠를 계속 만나며 이혼한 부모를 다시 재결합 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한때 아빠의 친한 친구였던 잭과 재혼한 엄마를 보며 모든것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이 스토리는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과거보다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과거에 더 가깝습니다.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 속의 프랭크처럼 어린 나이에 부모가 이혼을 하고 엄마가 떠난 이유가 아빠의 친한 친구와 바람이 났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반면 프랭크는 영화와는 다르게 가출한 뒤로 부모를 만나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고 프랭크의 엄마도 재혼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스필버그 감독은 <캐치 미 이프 유 캔> 뿐만이 아니라 <E.T.> , <미지와의 조우> , <인디아나 존스> , <링컨> 등 여러 작품에서 아빠와 아들의 관계에 집중합니다.
 극 중에서 프랭크가 사용한 가명 ‘배리 앨런’은 DC의 슈퍼히어로 플래시의 본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미성년자로 추정하는데, 배리 앨런 외에도 프랭크가 사용한 가명들 중 재밌는 디테일이 담겨있습니다. 팬암 기장을 사칭한 프랭크는 ‘하늘의 제임스 본드’ 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 이 별명이 마음에 든 프랭크는 영화 <007>에서 나온 정장을 맞춥니다. 이때 사용하던 이름은 ‘미스터 플레밍’인데 007 시리즈 원작자인 ‘이언 플레밍’을 참조한 가명입니다. 그리고 의사를 사칭할 때 이용하던 가명은 ‘프랭크 코너스‘인데 닥터 코너스는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메인 빌런인 리저드의 본명입니다.
 모든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가 그렇듯이 영화의 재미를 위해 각색되거나 과장된 부분도 물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속 프랭크는 외아들로 설정되어 있지만 4남매 중 셋째 아들이었고, 프랭크는 가출한 뒤 아빠와 다시 만나는 장면들이 있지만 실제로는 가출한 뒤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영화속에서 프랭크를 집요하게 쫓던 ’칼 핸레티‘는 가상이 인물이고, 실제로 프랭크를 쫓던 수많은 FBI 요원 중 한명인 ’조세프 시어‘를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라고 합니다. 브랜다 또한 간호사가 아닌, 당시에 프랭크가 사귀던 승무원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이고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3. ‘사기꾼의 회고록’ 믿을 만 한 이야기일까?


 영화와 현실의 차이를 비교할 때 대부분의 자료는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회고록, 프랭크의 인터뷰, 그리고 인터뷰와 회고록을 기반으로 보도된 프랭크의 기사들입니다. 즉 이 모든 자료들은 전부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입에서 나온 말들뿐입니다.
 회고록에 따르면 프랭크는 5년동안 FBI를 피해 다녔고 1971년 프랑스에서 단 한 번 체포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프랭크는 5년간 캘리포니아, 조지아, 루이지애나, 매사추세츠, 뉴욕, 텍사스, 그리고 프랑스까지 총 7번 체포된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회고록에 따르면 프랭크의 대형 사기 사건들은 전부 17살 때부터 20살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하지만 프랭크는 17살부터 20살까지 3년간 ‘콤스톡’ 뉴욕에 위치한 교도소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즉 기록에 따르면 5년동안 프랭크는 FBI를 피해 다닌 것이 아니라 대부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고 밖에서 사기를 치고 다닌건 길어봐야 3개월 정도뿐입니다.
 1971년 프랭크는 보안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애틀랜타 연방 교도소에서 유일하게 탈옥한 사람이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프랭크는 연방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당시에 애틀랜타 조지아에 위치한 작은 지역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는데 탈옥시도를 한 것은 맞지만 바로 잡혔다고 합니다.
 결국 체포된 프랭크는 위조기술 실력을 인정받고 FBI에서 40년을 넘게 일을 했다고 주장하며 100주년 기념으로 출판한 FBI 역사책에서도 본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히기도 했지만 책에서 프랭크의 이름은 그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았고, 지난 40년간 FBI 측에서 프랭크에 대해 언급한 적 또한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프랭크의 친구로 알려진 FBI 요원 중 ‘조세프 시어’와 ‘로버트 러스 프랭크’가 있었는데, 로버트는 1978년 데일리 인터뷰 중 “빌어먹을 애버그네일이 내 이름을 들먹이고 다니지만 그를 만나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프랭크는 가석방되고 난 뒤 텍사스에 위차한 작은 동네에서 편의점, 고아원, 주유소, 그리고 어린이 캠프 등 여러 곳에서 일한 기록들이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FBI에서 일을 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프랭크는 루이지애나에서 변호사 시험을 합격한 건 사기가 아니었다고 밝히면서 실제로 합격한 뒤 루이지애나 주검찰청에서 일을 하며 총 33건의 소송을 해결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루이지애나에서 일했다는 기록이 아예 없는것 뿐만이 아니라 변호사 시험을 봤다는 기록조차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프랭크가 팬암 항공사에서 위조한 수표는 250만 달러였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팬암 측에서 밝혀진 바로는 프랭크가 위조한 수표는 단 10장이며 액수는 1,500달러 미만이었다고 합니다. FBI 공식 사이트에서도 보면 정확한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불리는 프랭크가 ‘스몰 포테이토’ 번역하면 사소한 사건에 해당되어 있습니다.
 프랭크에 대한 여러 증언들과 기록들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1978년부터 프랭크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을 해왔지만 각종 티비쇼와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회고록,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까지 제작되면서 전부 묻혀버렸습니다. 2021년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과거를 폭로한 책이 또 한번 출간되면서 아직까지도 프랭크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노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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