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왕의 남자> 간단한 정보
연산이 왕이었던 시절, 여자보다 더 여자 같던 광대 '공길'과 당시 최고의 광대 '장생'의 일생을 다룬 이야기를 다룬 대한민국의 역대 천만 영화 <왕의 남자> 입니다. 영화 <왕의 남자>는 아마 한국인이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작품일 것입니다. 연산군의 이야기를 다룬 김태웅의 희극 <이(爾)>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입니다. 천만이 넘는 관객이 본 만큼 다양한 수식어가 붙었는데, '무명배우였던 '이준기'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작품' , '가장 한국적이었던 영화' , '몇 안되는 한국의 마스터피스'등이 있습니다.
감독 '이준익'을 한국인의 뇌리에 콱 박히게 했던 작품이며,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와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세번째로 천만관객을 기록한 영화입니다. <왕의 남자>를 볼때마다 공감되는 인물이 다르다는 것은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장생과 공길의 동성애를 다룬 영화? (줄거리/스포포함)
사실 영화 <왕의 남자>는 논란이 많은 영화입니다. 장생과 공길의 이야기, 즉 동성애가 주제인가 혹은 비운의 군주, 연산의 비극이 주제인가를 두고 많은 관객들의 뜨거운 논쟁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처음 볼 때는 연산이라는 인물의 비극이 와닿지만, 반복해서 볼수록 장생과 공길의 절절한 이야기에 매료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장생은 영화 내내 공길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영화 초반, 공길이 희롱을 당하려하자 천민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해 하늘같은 양반에게 도전을 합니다. 실제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후 자신의 생계였던 남사당패를 떠나 공길과의 미래를 위해 한양이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주저없이 떠나는 모습에서 장생의 능동적이고 솔직한 면모를 포착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공길은 굉장히 수동적인 인물입니다. 여자보다 더 여자같은 외모 때문에 권력자들에게 몸을 팔아야하는 현실에 대해 저항하지 않습니다. 공길의 수동성은 장생을 대할 때도 적용되는데, 장생을 형이나 동료 그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쉽게 표현하지 않는 내향성을 보입니다.
이러한 두사람의 차이는 장생과 공길이 궁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들어가며 문제가 됩니다. 양반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왕 '연산' 또한 공길을 몰래 부르게 되었고 장생은 왕을 질투하기 시작합니다. 천한 광대의 신분이었던 장생의 질투는 결국 왕이 아닌 공길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고 둘은 전례없는 갈등을 겪습니다. 아마 궁이라는 공간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리고 연산이라는 높은 벽을 만나지 않았다면 둘의 이러한 갈등은 쉽게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살인을 저지른 공길의 불안감을 풀어주기 위해 장생이 장님놀이를 했던것 처럼 쉽게 말입니다.
뒤이어 궁에서 동료 육갑이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장생과 공길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게 됩니다. 그토록 마음을 표현했지만 자신이 아닌, 왕의 아픔에 공감하고 궁에 남고자 하는 공길에 대한 배신감으로 장생은 궁을 떠나려 합니다. 갈등하는 두사람 앞에, 공길을 질투해 녹수가 판 함정에 빠지게 되는 위기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장생은 모든 죄를 혼자 뒤집어 씁니다.
이 일로 옥에 갇혔던 장생은 처선에 의해 옥에서 나올 수 있었지만 공길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왕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왕 앞에서 줄타기를 하며 왕과 공길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폭로하게 됩니다. 그 일로 장생은 결국 눈을 잃게 됩니다. 이 때 장생이 본인은 더이상 잃을것이 없다는 대사를 하는데, 여기서 이미 잃은것은 아마 공길에 대한 사랑일 것입니다. 남사당패를 탈출한 이유, 그토록 광대로서 성공하고 싶었던 이유 모두 공길이었지만 공길의 시선은 왕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인물이고 왕 앞에서 용감할 수 있었습니다.
용기의 대가로 장생은 눈을 잃었고, 공길은 감옥에서 장생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제서야 공길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집니다. 영화의 결말부, 자신의 처지에 대해 한탄하는 장생에게 공길이 간접적으로 사랑을 고백합니다. "어느 잡놈이 그놈 마음 훔쳐가는걸 못보고" 라는 장생의 대사에서 잡놈은 연산이고 그놈은 공길일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장생을 향한 공길의 대사인 "야 이 잡놈아!" 라는 대사로, 공길의 마음을 훔쳐간 잡놈은 다름아닌 장생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공길은 장생이 타는 줄 위로 올라가 줄을 튕김으로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합니다.
이후 두사람은 함께 한 줄을 타게 됩니다. 줄타기는 원래 한 줄에 한 사람이 타는 것인데 둘이 탄다는 것은 자살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광대가 되고 싶다던 그들의 대사와 광대에게는 생명인 부채를 던지는 장생의 행동을 통해 우리는 두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의 엔딩에서 주인공들의 대사인 "나 여기있고 너는 여기없지" 를 통해 저승과 이승을 나누는데 이를 통해 공길과 장생의 죽음을 확정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영화 <왕의 남자>는 감정에 솔직한 인물과 그렇지 못했던 두 인물 사이의 절절한 줄다리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여타 인물과 달리 공길의 감정과 행동동기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공길이라는 인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했던 원작과 비교하면 아쉬운 점으로 뽑을 수 있습니다.
3. 어리고 여렸던 군주 '연산'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 말고도 관객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또 있습니다. 바로 조선의 10대 왕이었던 연산이라는 캐릭터 입니다. 원작인 극 <이(爾)>도 그렇고 이준익 감독의 영화 <왕의 남자>도 그렇고 결국 두 작품의 핵심이 되는 인물은 연산입니다. 보통 연산군하면 각종 폭정과 향락에 빠져 종내에는 중종반정으로 몰려난 폭군으로 기억을 할텐데, 영화 <왕의 남자>는 이러한 보편적 인식을 뛰어넘어 연산의 인간적인 측면에 주목한 영화입니다.
연산은 조선의 법제를 완성한 성종의 아들입니다. 조선 건국 초기 성리학적 질서를 바탕으로 국가의 기강을 바로 잡아야했고, 이에 성종의 아들인 연산에게는 각종 제도와 규율에 맞는 모범적인 삶이 강요되었습니다. 즉, 궁에서 그의 일평생은 늘 아버지인 성종과 비교 대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연산군 나이 7세에 사약을 받고 죽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강요받은 각종 제도와 규율, 친어머니 없이 커야했던 현실, 이는 연산이라는 한사람에게는 분명 큰 슬픔이었을 것입니다.
극 중 연산이 조선의 왕들이 일반적으로 입는 빨간 곤룡포가 아닌 시퍼런 곤룡포를 입는 설정은 차가운 이미지로 하여금 그의 우울함과 슬픔을 대변한 연출일 것입니다.이어 영화 내내 마음속 상처로 인한 결핍을 채우려는 연산의 다양한 행동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연상의 여인 녹수와 문란한 성생활을 하는것과, 성리학적 가치를 바탕으로 왕으로서의 삶을 강요받는 자신과는 달리 무대 위에서 왕도 되고 여자도 되는 자유로운 광대들을 부러워하며 그들과 함께 무대를 즐기는 장면입니다.
이후 공길에게 마음을 주고 그를 소유하려 했지만 공길이 자살시도를 하며 자신에게 등을 돌리자 마치 어린아이가 망가진 장난감을 버리고 새로운 장난감을 찾듯 다시 녹수에게 걸어가는 모습은 그의 심리적 공허함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일생을 억압적이고 불안하게 살아야했던 그에게는 항상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폭정, 향락, 사치 등 비정상적인 방식이 그것이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받은적이 없기에 원초적인 쾌락만을 추구할 수 밖에 없었던 어리고 여렸던 왕, 연산의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주변에 진정으로 연산을 챙겨줬던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달랐을 것입니다. 빡빡한 신하들, 권위를 위해 자신을 이용하는 녹수,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도 모른척 했던 궁실 가족들,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 처선, 그리고 결국 자신을 버린 공길까지, 동성애와 더불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주목해야할 부분이 바로 연산이라는 군주의 쓸쓸함 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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