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캐치 미 이프 유 캔> 간단 정보
당시 최고의 항공사 팬암의 부기장, 하버드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의사, 그리고 버클리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까지 전부 10대의 어린 나이에 사회적으로 권위가 있는 직업들을 사칭하면서 최연소 사기꾼으로 알려진 실존 인물 ‘프랭크 애버그네일 주니어‘. 그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입니다.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톰 행크스, 크리스토퍼 워컨, 에이미 애덤스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작품서과 흥행성을 전부 잡은 영화입니다.
2.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비하인드 스토리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5200만 달러의 제작비로 3억 5,200만 달러(한화로 대략 4,4040억원)를 벌어들이면서 제작비의 6배에 달하는 대박을 터뜨렸지만 2002년에 개봉한 영화들이 어벤저스 급이라 글로벌 흥행 순위는 11위를 기록했습니다. 평가는 로튼토마토 96퍼센트, 메타크리틱 75점, IMDB8.1로 연기력/연출/스토리 등 뭐하나 빠짐없이 전체적으로 호평이 많았습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 영화는 실존 인물 ‘프랭크 애버그네일 주니어’의 동명 회고록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물론 영화의 재미를 위해 각색되거나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프랭크에 따르면 대략 80퍼센트 정도가 사실이었다고 직접 인정했습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티비 프로그램 ‘투 텔 더 트루스’에 프랭크가 등장하며 영화가 시작되는데, 실제로 프랭크는 1977년 ‘투 텔 더 트루스’에 출연한 바가 있고, 출연자들의 대사까지 그대로 가져와 연출되었습니다. 영화상에서 결과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당시에 실제로 프랭크가 누구인지를 맞춘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극 중에서 프랭크는 가출한 뒤로 아빠를 계속 만나며 이혼한 부모를 다시 재결합 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한때 아빠의 친한 친구였던 잭과 재혼한 엄마를 보며 모든것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이 스토리는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과거보다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과거에 더 가깝습니다.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 속의 프랭크처럼 어린 나이에 부모가 이혼을 하고 엄마가 떠난 이유가 아빠의 친한 친구와 바람이 났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반면 프랭크는 영화와는 다르게 가출한 뒤로 부모를 만나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고 프랭크의 엄마도 재혼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스필버그 감독은 <캐치 미 이프 유 캔> 뿐만이 아니라 <E.T.> , <미지와의 조우> , <인디아나 존스> , <링컨> 등 여러 작품에서 아빠와 아들의 관계에 집중합니다.
극 중에서 프랭크가 사용한 가명 ‘배리 앨런’은 DC의 슈퍼히어로 플래시의 본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미성년자로 추정하는데, 배리 앨런 외에도 프랭크가 사용한 가명들 중 재밌는 디테일이 담겨있습니다. 팬암 기장을 사칭한 프랭크는 ‘하늘의 제임스 본드’ 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 이 별명이 마음에 든 프랭크는 영화 <007>에서 나온 정장을 맞춥니다. 이때 사용하던 이름은 ‘미스터 플레밍’인데 007 시리즈 원작자인 ‘이언 플레밍’을 참조한 가명입니다. 그리고 의사를 사칭할 때 이용하던 가명은 ‘프랭크 코너스‘인데 닥터 코너스는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메인 빌런인 리저드의 본명입니다.
모든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가 그렇듯이 영화의 재미를 위해 각색되거나 과장된 부분도 물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속 프랭크는 외아들로 설정되어 있지만 4남매 중 셋째 아들이었고, 프랭크는 가출한 뒤 아빠와 다시 만나는 장면들이 있지만 실제로는 가출한 뒤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영화속에서 프랭크를 집요하게 쫓던 ’칼 핸레티‘는 가상이 인물이고, 실제로 프랭크를 쫓던 수많은 FBI 요원 중 한명인 ’조세프 시어‘를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라고 합니다. 브랜다 또한 간호사가 아닌, 당시에 프랭크가 사귀던 승무원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이고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3. ‘사기꾼의 회고록’ 믿을 만 한 이야기일까?
영화와 현실의 차이를 비교할 때 대부분의 자료는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회고록, 프랭크의 인터뷰, 그리고 인터뷰와 회고록을 기반으로 보도된 프랭크의 기사들입니다. 즉 이 모든 자료들은 전부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입에서 나온 말들뿐입니다.
회고록에 따르면 프랭크는 5년동안 FBI를 피해 다녔고 1971년 프랑스에서 단 한 번 체포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프랭크는 5년간 캘리포니아, 조지아, 루이지애나, 매사추세츠, 뉴욕, 텍사스, 그리고 프랑스까지 총 7번 체포된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회고록에 따르면 프랭크의 대형 사기 사건들은 전부 17살 때부터 20살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하지만 프랭크는 17살부터 20살까지 3년간 ‘콤스톡’ 뉴욕에 위치한 교도소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즉 기록에 따르면 5년동안 프랭크는 FBI를 피해 다닌 것이 아니라 대부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고 밖에서 사기를 치고 다닌건 길어봐야 3개월 정도뿐입니다.
1971년 프랭크는 보안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애틀랜타 연방 교도소에서 유일하게 탈옥한 사람이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프랭크는 연방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당시에 애틀랜타 조지아에 위치한 작은 지역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는데 탈옥시도를 한 것은 맞지만 바로 잡혔다고 합니다.
결국 체포된 프랭크는 위조기술 실력을 인정받고 FBI에서 40년을 넘게 일을 했다고 주장하며 100주년 기념으로 출판한 FBI 역사책에서도 본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히기도 했지만 책에서 프랭크의 이름은 그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았고, 지난 40년간 FBI 측에서 프랭크에 대해 언급한 적 또한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프랭크의 친구로 알려진 FBI 요원 중 ‘조세프 시어’와 ‘로버트 러스 프랭크’가 있었는데, 로버트는 1978년 데일리 인터뷰 중 “빌어먹을 애버그네일이 내 이름을 들먹이고 다니지만 그를 만나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프랭크는 가석방되고 난 뒤 텍사스에 위차한 작은 동네에서 편의점, 고아원, 주유소, 그리고 어린이 캠프 등 여러 곳에서 일한 기록들이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FBI에서 일을 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프랭크는 루이지애나에서 변호사 시험을 합격한 건 사기가 아니었다고 밝히면서 실제로 합격한 뒤 루이지애나 주검찰청에서 일을 하며 총 33건의 소송을 해결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루이지애나에서 일했다는 기록이 아예 없는것 뿐만이 아니라 변호사 시험을 봤다는 기록조차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프랭크가 팬암 항공사에서 위조한 수표는 250만 달러였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팬암 측에서 밝혀진 바로는 프랭크가 위조한 수표는 단 10장이며 액수는 1,500달러 미만이었다고 합니다. FBI 공식 사이트에서도 보면 정확한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불리는 프랭크가 ‘스몰 포테이토’ 번역하면 사소한 사건에 해당되어 있습니다.
프랭크에 대한 여러 증언들과 기록들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1978년부터 프랭크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을 해왔지만 각종 티비쇼와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회고록,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까지 제작되면서 전부 묻혀버렸습니다. 2021년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과거를 폭로한 책이 또 한번 출간되면서 아직까지도 프랭크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노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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